종이 그렇다 그것은 종이였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6. 6. 11:20 카테고리 없음

 

 

 

 

 

 

종이 그렇다 그것은 종이였다

 

 

 

 

 

 

하지만 세상에 이런 종이가 어디에 있을까. 다른 비실비실한 종이들과는 다르게 이 종이는 마치 나에게 말을 하는 양 빛을 내고 있었고, 내가 들고 있는 서류 가방에 담긴 종이들은 무서워 덜덜 떠는지 나의 팔이 떨리고 있었다. 그 어둠이 가득 드리워져 있던 골목도 이 종이에 경의를 표하는 찬란한 달빛에 그 모습을 감추었다. 이 쓰레기들의 사이에서도 종이를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지, 주위에는 파리들이 얼씬거리지도 않았다. 또한 음식물 쓰레기에서 나오는 액체도 그 종이를 피해 흘렀으며, 구토를 했던 남자도 종이를 피해 구토를 하고 쓰러져 있었다.

 

 

 

 

 

 

나는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을 온 몸으로 음미했다. 그 뒤에 알았지만, 아마 이것을 경외감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튼, 그런 마음을 가지고 떨리는 손을 천천히 뻗어 그 종이를 집었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아무렇지도 않은 행동이지만, 나에게는 온갖 고난 끝에 보물을 손에 넣는 모험가와 같은 기분이었다. 그와 동시에 온 몸에서 돋아 오르는 소름은 내가 이 종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몸이 직접 보여주었다.

, 오오오……….”

입에서는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기쁨을 말로 표현할 방법을 찾지 못하여 이런 말만 나온 것이다.

오랜 친우여, 내가 잘못되었었다. 내가 틀렸었다. 이 세상. 즐겁고 재밌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을 분기점으로 나는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렇게 생각하고 조심스레 잡은 종이를 가지로 집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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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도착하고 나서 한 일은 대청소였다. 종이를 들고 집으로 와보니 이때까지 내가 살고 있었던 집은 돼지우리나 다름이 없었던 것이었다. 아무렇게나 내던져진 신발들, 세탁기 앞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옷들, 접시 위에서 파리를 유혹하며 살들을 내어주고 있는 치킨, 씻어야지 하면서 싱크대에 내던져둔 채 쌓여있는 수많은 식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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