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를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8. 2. 12:46 카테고리 없음

 

 

 

 

 

문자를 보내고 나서 휴대폰을 다시 바닥에 내려놓았다

 

 

 

 

 

 

 

 

 

한 오 분 동안 나영에게선 문자가 오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은 만나자고 하면 절대 바로 좋다고 대답하지 않는 법이다. 그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규칙 같은 것이 있는 모양이다.

엄마가 현관으로 가려는 걸 보고 나는 그 앞 까지 따라 나간다.

조심해서 다녀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고개를 드는 엄마의 얼굴이 조금 들떠 보인다. 붉은 입술을 모아 뽀뽀를 하듯 쪽 하고 소리를 낸 다음 말한다.

 

 

 

 

 

 

사랑한다, 아들.

나는 문을 열고 나간 엄마가 콧노래를 부르며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는 걸 보다가, 현관문을 닫고 안방으로 돌아왔다. 휴대폰을 열자 나영에게서 온 문자가 뜬다.

그럴까? 근데 뭐 할 건데?

뭐 공원 갔다가 영화나 보자.

음 그래. 언제 볼까?

 

 

 

 

그냥 너 준비되는 대로 나와.

남자 친구였다면 약속 하나 잡는데 오고 가는 문자가 이렇게 길어지지 않을 거다. 여자들은 왜 서로 다 알고 있는 얘기를 빙빙 돌려서 결국 내 입으로 말하게 하는지 모르겠다. 머릿속에는 이미 원하는 걸 정해 놓고서 마치 모든 결정권이 나에게 있다는 듯 물어보는 게 내 생각엔 좀 우습다. 그래놓고 가끔 그런 여자의 생각을 알면서도 귀찮아서 모른 척 하거나, 혹은 정말 몰라서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지 않으면 그대로 토라져 버린다. 그리고선 왜 심통이 난 건지는 절대 말해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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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몇 걸음을 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Posted by 트럼프h
2016. 6. 17. 10:28 카테고리 없음

 

 

 

 

 

그는 몇 걸음을 채 벗어나지 못하고 다시 편의점으로

 

 

 

 

 

 

 

돌아온다. 여전히 고요함이 흐른다. 그것이 평화라고 그는 믿었다. 새벽 4. 그의 시간은 뭉텅 잘려나가고 어느새 하루가 지난다. 밖은 여전히 새까만 밤이다. 그는 무심결에 서랍을 뒤지다 누군가의 이력서를 보게 된다. 아마 그를 대신할 누군가를 구했나 보다. 그의 칭얼거림이 짜증이 났는지 사모는 그를 내몰려 한다. 그는 답답하기보다 홀가분하다. 그녀를 내쳤듯이 이제 이곳도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내치려던 내일을 조금 앞당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차라리 잘한 일이라고 자신을 위로한다. 그는 그녀의 지난 생일이 떠오른다. 완벽한 이별 뒤 찾아왔던 그녀의 생일이었다. 그녀의 생일이 떠오르자 그전에 있었던 술자리가 떠오른다. 그의 옆에 앉아 그의 주절거림을 하염없이 받아주던 그녀가 넋이 나간 얼굴로 속삭였다.

 

 

 

 

 

이번에 내 생일에 뭐 줄 거야?”

그는 이제껏 마셨던 술이 쏠리는 것을 느꼈다. 생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실망한 것이 보였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사귀기 전까지 그녀를 혼자서 짝사랑해왔다. 그러나 연애는 원하지 않았다. 그는 사랑받을 만큼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고 그녀를 또한 행복하게 해 줄 자신이 없었다. 그는 비워진 술잔을 다시 채워 남겨둔다. 그것은 그가 준비해 놓은 고배였다. 그는 그때 남겨 놓았던 술잔을 떠올리며 그녀와 헤어졌다. 그리고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신다고 잊힐 리 없었다. 오랜 시간 세월의 먼지가 뿌옇게 앉아야 한다. 들춰내서도 안 되는 미련한 이별이었다.

 

 

 

 

 

미련하게도 그는 완벽한 이별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이미 그를 망쳐놓은 뒤였다. 그는 시계를 본다. 새벽 440분이다. 곧 있으면 애국가가 흘러나오겠지. 나라를 사랑하는 노래. 국민학교가 초등학교가 되고 중학교가 되고 고등학교가 되고 대학교가 되고 군대가 되도록 그 노래를 지겹게도 들어왔지. 그는 이제 그 노래를 진심으로 부르겠노라 다짐한다. 이제 5분이 지나면 애국가가 들려올 것이다. 그는 누구도 사랑한 적 없으면서 애국가는 어떻게 사랑할지 걱정된다. 그러나 걱정할 것 없다. 애국가만 불러도 나라를 사랑하는 것이다. 마치 예수를 믿지 않았으면서도 성경을 읊조리는 아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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