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비꼰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속을 알 수 없었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8. 3. 12:57 카테고리 없음

 

 

 

 

 

 

분명 비꼰 것 같은데 왜 그러는지 속을 알 수 없었다

 

 

 

 

 

 

 

 

 

 나는 갑자기 왜 그러냐고 물었지만 나영은 그저 됐다고만 보내왔다. 그렇게 나오니까 도무지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약간 짜증도 났다. 나는 그때 그냥 이대로 연락을 끊어버릴까 고민했다. 어떤 말을 보내야 할지 몰라서 휴대폰 번호판 위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내가 사는 B동의 입구로 올라갔다.

 

 

그때까지 휴대폰만 보고 있다가 아파트 입구의 계단을 두 칸 정도 올라갔을 쯤에서 고개를 든 나는 순간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아파트 입구에 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주위가 어두워 정체모를 커다란 무언가가 세워져 있는 줄 알았다. 그러니까 뭔지도 모르면서 그냥 앞에 뭐가 있어서 순간적으로 놀란 것뿐이었다. 뒤로 물러나며 실수로 발을 헛딛을 뻔 했지만 겨우 아래의 계단을 딛고 균형을 맞춰 섰다. 다시 보니 그것은 어떤 여자였다. 내 등 뒤에 선 가로등 빛에 의해 여자의 모습이 드러났다

 

 

 

 

 

 

. 나는 그 모습에 더 놀랐다. 키가 아주 크고 뼈에 살가죽만 겨우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일 정도로 마른 여자가 입구에 기대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한 눈에 그 여자가 옆집에 사는 여자라는 걸 알았다. 여자는 내가 한참이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데도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여자의 두 눈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 있었고 입은 반쯤 벌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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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뭘 하던 어떤 일이 일어나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6. 23. 14:54 카테고리 없음

 

 

 

 

 

 

 

누가 뭘 하던 어떤 일이 일어나든 별로 관심이 없었다

 

 

 

 

 

 

 만약 그때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 해도 나는 눈물 한 방울 안 흘렸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확신한다. 누군가가 내게 그것으로 내기를 건다면 응할 자신도 있다.

그때 나는 그런 내 상태를 타개할 마지막 수단을 떠올렸다. 죽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는다는 것을 두렵게 생각한다. 실제로도 두려운 이야기다. 죽음이라니. 그 이상의 무거운 주제가 있을 수 있을까?

 

 

 

 

 

 

그러나 그때 나는 그 무거운 것을 간단하게 생각할 만큼 지나치게 가벼워져 있었다. 어차피 내가 사라지더라도 세상은 알아서 잘 굴러갈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굳이 아등바등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내가 그렇게 살아야 이유를 잃어버리면서 네 개의 선택문이 생겼다. 그래도 살던가. 목을 매달던가. 약을 먹던가. 벼랑에서 떨어지던가. 나는 적어도 첫 번째는 선택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럼에도, 감정에 동요를 일으키지 않았다. 물론 사람들은 첫 번째를 선택한다.

 

 

 

 

 

수업이 끝나자 나는 가방을 싸면서 내일까지 준비해야 하는 참고서 목록을 확인했다. 친구가 와서 내일 야구장에 가자고 했다. 시간과 약속시간을 정하고 학교를 나왔다. 여느 학생들과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나는 버스정류장을 향하면서 어떻게 죽을까라고 생각했다. 죽기 적당한 장소는 많았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가장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떨어지는 게 가장 간단하고 쉬웠지만, 그러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한참을 생각하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본 반쯤 지어진 채 방치된 빌딩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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