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들어가 버렸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7. 13. 11:40 카테고리 없음

 

 

 

 

 

 

나는 재빨리 말했다 그는 아무 대답도 없이 들어가 버렸다

 

 

 

 

 

 

 

또 보자 세준아.

…….

그 눈빛을 알고 있다. 분노로 가득한 그 눈빛은 기억속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희….

사제관으로 돌아온 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잔잔한 강에 누군가가 돌멩이를 던진 듯 머릿속에서 파문이 일고 있었다. 초조한 느낌이 들어 책상 위를 쳐다보니 화분이 눈에 띄었다. 나 없는 사이에 에스더 수녀님이 다녀가셨는지 싱싱한 스파티필름은 아직 물을 머금고 있었다.

 

 

 

 

 

 

‘강인한 생명력이구나.’

나는 눈을 감았다.

첫 영성체를 받던 날, 어머니 옆에서 잘 돌아가지 않는 혀를 굴리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기도하던 날들. 찬송가를 부르던 어머니의 모습.

우리 가족은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나 이렇게 3명이었다. 우리 집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었고 집에서는 큰소리 한번 난 적이 없었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신부님이 되고 싶어했다. 부모님은 그런 나의 선택을 지지하고 자랑스러워하셨다.

어느 날 나는 어머니의 품겨 안겨 가톨릭 잡지를 보고 있었다. 한 사제가 땅바닥에 엎드린체 순명서약을 하고 있는 사진이 실려 있었다. 나는 언젠가 나도 이렇게 멋지게 엎드려서 순명서약을 할 거라고 말씀드리자 너는 분명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며 그때는 어머니께서 신자들과 함께 참석해 가장 흐뭇한 미소로 그 모습을 보고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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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게 병을 보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6. 8. 13:33 카테고리 없음

 

 

 

 

 

 

종이에게 병을 보여주며 그렇게 말했다

 

 

 

 

 

 

 

 

 

종이와 병은 둘 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나의 요청을 어쩔 수 없이 들어주겠다는 종이의 툴툴거리는 말과, 고맙다고 말하며 연신 고개를 숙이는 병의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나는 이때까지 짓지 못했던 진심이 가득 담긴 웃음을 지으며, 종이의 바로 옆에 높이가 딱 액자의 끝 부분이 닿는 작은 서랍장을 가져와 그곳에 두고 그 위에 병을 올려두었다. 종이가 병을 괴롭히고, 외롭던 병이 그것을 전부 받으며 웃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절로 흐뭇한 기분이 들어, 그 모습을 하루 내내 지켜보았다.

종이를 찾고 난 지 다섯 달 만에 찾은 그 병을 기점으로, 이때까지 숨어있으며 나오지 않던 많은 수집거리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버스 안에서 의도하지 않게 자신의 주인에게 떨어져 나와 버려 ‘혼란’에 휩싸인 한 여인의 머리카락. 이때까지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아파트 베란다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만 높은 곳에서 떨어져버려 ‘공포’를 느끼게 된 사각팬티. 이때까지 자신을 희생하여 주인에게 기쁨을 주었지만, 자신의 가치가 없어지자 매몰차게 자신을 버린 주인을 원망하지도 못하는 자신에게 ‘절망’하는 껌 등등.

 

 

 

 

 

많은 수집품들이 방에 하나 둘씩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고, 기계의 부품밖에 되지 않다고 생각하여 조금씩 사라져갔던 나의 감정도 이들에 의해 조금씩 다양해져 가는 것 같았다. 다양해진 감정에 주위 사람들도 놀랐으며, 수집품들도 자신들 덕분에 내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알고 흐뭇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모으던 수집품은 어느새 아흔 아홉 개를 달성하였다. 당연히 나의 마음에는 행복함이 넘치고 있었지만, 조금, 정말로 조금, 아주 조그마한 바람이 있다면.

 

 

 

 

 

종이 이후의 수집품에게서 느끼지 못하였던, 처음 종이를 만났을 때의 그 강렬한 충격을 다시 한 번 더 느끼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충격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예상하지도 못했던 때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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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인을 만난 때는 공원의 벤치에서 백 번째 수집품이어야 했었던 반지를 수집하던 중이었다. 사실 백 번째 수집품이니 만큼 거창한 것을 하나 수집하고 싶었지만, 막상 벤치 위에 있는, 병과는 또 다른 ‘외로움’을 지니고 있는 반지를 보자니, ‘같은 외로움을 가지고 있는 수집품들이 반겨 주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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