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탑방으로 돌아와 단어장 사이에 금방 출력된 희망 하나를 꽂는다

Posted by 트럼프h
2016. 5. 29. 14:43 카테고리 없음

 

 

 

 

 

 

 

 

 

옥탑방으로 돌아와 단어장 사이에 금방 출력된 희망 하나를 꽂는다

 

 

 

 

 

 

 

 

 

 

 

언제 부터인가 희망은 45개의 숫자로 말할 수 있었다. 매주 마다 진행되는 대국민 몰아주기 이벤트는 불황을 탈 겨를이 없었고, 더 이상 기대를 걸 곳이 없는 사람들은 너도 나도 로또판매소에 몰려들었다. 신림 9동 고시촌에도 그 인기는 다른 곳에 못지않았다. 로또를 받아든 사람들은 이제 막 시험이 끝난 학생처럼 나오지도 않은 결과에 낙관하다가, 추첨이 끝나면 운이 없음을 탓하거나 괜히 지난 밤 꿈에 나온 할아버지를 원망했다. 그들은 그럴 때마다 지금은 한 방을 위해 움츠리고 있는 거라고 변명했지만 사실은 그냥 움츠러들기만 할 뿐이라는 걸 자기들도 알고 있다.

 

 

 

 

 

 

 

 

의자에 한쪽 다리를 올리고 구부정하게 앉아 글을 시작하던 때처럼 다시 볼펜을 입에 물었다. 눈앞에는 노란색, 파란색, 빨간색의 순서로 동그라미와 밑줄이 그어져 있는 문제집이 덩그러니 놓여있다. '공무원'이라고 쓰고 '신분 상승'이라고 읽는다. 도무지 이 시대착오적인 단어에 무슨 가치가 있는지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요즘 뭐하냐고 물어볼 때, "집에서 놀아요."보다는 좋은 답변이지 않을까. "이번에 9급 시험 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는 제법 현실적이면서도 명확한 목표 같이 들린다. 3,900개의 고시원에 살고 있는 사람 중 태반은 나와 같은 이유로 이곳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지난해 초부터 준비했던 시험은 겨울이 지나고 한차례 달력을 바꿨다. 9급 공무원 수험에는 이제는 더 이상 적을 곳이 남아있질 않다. 이쯤 되니 주변에서는 마무리를 해도 되지 않으냐며 물어보곤 하는데 정작 시험을 쳐야하는 나만 자신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끈기가 없던 나는 뭘 해도 하루를 넘기지 못했다. 지금도 나이만 먹었지 무엇 하나 마무리 하지 못한다는 것에는 변화가 없다. 시험을 한 달 앞둔 지금도 보는 바와 같이 책은 제쳐놓고 시답잖은 글이나 끼적이고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가 좋지 않은 작문실력을 가지고 있었던 터라, 한 문장은 문단이 채워지는 동안에도 수없이 고쳐지고 지우개가 지나간 자리에는 티가 났다. 글이야 미니홈피 다이어리에도 충분히 쓸 수 있지 않나 싶겠지만 그런 푸념들 보다는 의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 그렇다고 "나는 왜 쓰는가?"같이 있어 보이는 질문 따위를 하기엔 이유가 너무 빈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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