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저는 숨소리를 내며 엎드려 있었어요

Posted by 트럼프h
2016. 5. 15. 15:06 카테고리 없음

 

 

 

 

 

 

 

아무튼 저는 숨소리를 내며 엎드려 있었어요

 

 

 

 

 

 

 

 

 

 

 

 자리를 찾으려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리는데, 예상대로 제 앞엔 아무도 앉지 않더군요. 슬슬 일어나볼까, 생각하며 고개를 들려는데 갑자기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어요. 전 당황한 나머지 손등에서 코를 5cm 땐 위치에서 고개를 드는 걸 멈췄어요. 앞사람은 제가 있는 건 정말 아무 상관이 없다는 듯, 의자에 앉아 책을 꺼냈어요. 저를 깨우려는 듯 일부러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말이죠. 이 자리로 쏠리는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전 꿋꿋하게 버티며 자세를 유지했어요. 고개를 조금 들고 있는 자세는, 초등학생 때 벌을 받던 기마자세보다 더 힘들었어요. 저는 앞사람이 제발 책을 가지러 가길 내심 바랐어요. 그래야 그 사이에 제가 고개를 들 수 있거든요. 그러나 그 사람은 이미 책은 다 챙겨 온 듯 필통의 지퍼를 열고, 샤프를 꺼내 노트에 뭔가를 필기하는 거예요(이걸 제가 어떻게 다 아냐구요?

 

 

 

 

 

귀는 열려 있잖아요. 필통을 여는 지퍼소리, 뚜껑을 똑딱이는 샤프소리, 딱딱거리며 필기하는 소리들이 제 귀에 다 들려왔어요)! , 제 등엔 그 어느 때보다 불순물 덩어리의 알이 송알송알 맺혔어요. 그것은 목덜미와 얼굴에도 마찬가지였죠. 앞사람이 도저히 떠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저는 할 수 없이 고개를 번쩍 들었어요. 마치 악몽을 꾸다 견딜 수 없어 깬 사람처럼. 그러자 그 즉시 앞사람과 눈이 마주쳤어요. 여자였어요. 파마 끼가 있는 갈색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다가, 제 모습을 보곤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죠. 우리는 몇 초간 서로를 말없이 바라봤어요. 그러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죠. 괜찮으세요, 하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는 참으로 아름다웠어요. 물론 제가 인간관계를 멀리한 탓에,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적은 거의 없거든요. 그런데도 그 목소리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보다 더 아름답다고 느껴졌어요. 진부하게 표현하자면, 신이 내려주신 목소리? 그래요. 딱 이거였어요. 전 저만의 표현법을 찾기 위해 그녀의 목소리가 제 청신경을 자극해 대뇌로 전달하는 그 몇 초 동안에 생각해봤지만,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았어요. 그래서 결국 저런 진부한 표현밖에 꺼낼 수가 없었죠.

 

 

 

 

 

러는 사이 다시 괜찮으세요, 하고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녀는 저와 예전부터 안면이 있던 사람인 듯 정말 걱정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어요. 처음 보는 사람한테 이런 표정을 지을 수 있다니, 신기하다고 밖엔 생각할 수 없었죠. 보통 때 같으면 다른 사람들이 건성으로 던지는 저런 말에도 저는 그저 매몰차게 대할 뿐인데,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은 거부할 수가 없더라구요. 전 저도 모르게 괜찮아요, 하고 대답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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