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다가오자 연우는

Posted by 트럼프h
2016. 5. 3. 16:26 카테고리 없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이 불현듯 다가오자 연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거실로 나가 쇼파에 걸터앉았다. 긴 팔을 하늘위로 뻗어 시원스레 기지개를 켜고 입을 쩍 벌린 채 하품을 했다. 약간은 과장된 이런 행동은 연우에겐 외로움을 쫓는 좋은 방법이었다.

그는 소파에서 일어나 몽롱한 표정으로, 주방을 향해 나른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몸속에 남아있는 잠기운을 떨쳐내기엔 커피만한 것이 없었다. 그는 익숙한 동작으로 전기포트에 물을 받아 스위치를 돌리고 찬장을 열었다. 커피, 설탕, 크림이 담긴 통을 꺼내다 그 옆에 나란히 놓인 담뱃갑에 눈길이 뺏겼다. 말보로 맨솔.

<이걸 태우면 내 마음이 조금은 덜 탈까 싶어서.>

그녀의 말이었다. 그녀는 담배를 피울 때마다 연우에게 그런 말을 했다. 담배문제로 그녀에게 화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지만, 항상 멋쩍은 듯 입가에 허무한 미소를 그리며 그렇게 말했다.

 

 

 

 

 

귀를 때리는 수증기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린 연우는 커피, 설탕, 크림을 각각 한 스푼씩 하얀 머그잔에 넣었다. 통들을 다시 선반에 차곡차곡 쌓아 넣다가 다시 설탕이 들어있는 통을 꺼내 두 스푼을 더 머그잔에 넣었다.

<넌 그걸 달아서 어떻게 먹냐?>

어디선가 핀잔주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연우도 그녀가 그러하듯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쑥스럽게 그냥 웃기만 했다.

연우가 그녀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신입생 환영회에서였다. 별거 아닌 것에 웃고 떠들며 마시는 게 전부였던 그곳이 답답해서 빠져나온 술집입구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맨바닥에 아무렇게나 앉아, 한창 흥겨움에 취한 사람들로 북적이는 대학가 술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 그의 성격대로라면 못 본 척 스쳐지나갔어야 했다. 하지만 연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어쩌면 쓸쓸하게 보이는 그녀의 등이 눈에 밟혔는지도 몰랐다.

 

 

 

 

 

 

“여기 혼자 앉아서 뭐해?”

“그냥, 답답해서 나왔어.”

“좋아? 이렇게 혼자 있는 거.”

“재미있다고는 생각해.”

“그럼 갈게.”

“……”

그때, 그녀의 마지막 대답은 술에 만취된 사람들이 만들고 지나간 소음에 묻혀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연우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표정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절대 모르는 것이란 걸. 언젠가 그가 감당할 수 없는 고통으로 겪었던 것과 같다는 걸. 그건 누군가의 부재로 인한 아픔에서만 나오는 표정이었다.

 

게시글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