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진이한테 냉대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Posted by 트럼프h
2016. 5. 22. 14:02 카테고리 없음

 

 

 

 

 

 

 

 

수진이한테 냉대를 당해도 할 말이 없을 텐데

 

 

 

 

 

 

 

 

 

 

내가 오히려 그 아이에게 큰소리를 치다니. 그 아이는 적어도 나처럼 남의 동정을 구걸하지는 않았다.

너 같은 게 누굴 돕겠다고······.’

나는 내 뺨을 때렸다. 반대쪽 뺨도 때렸다. 때리고 또 때렸다. 거울 속에 일그러진 내 얼굴이 너무도 못나 보였다.

나는 감기에 걸려서 한 주 동안 수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밖에 다니지 못할 만큼 심한 감기도 아니었고 도서관에도 꼬박꼬박 나가고 있었지만, 수진이를 보러 가지 않았다. 그 아이를 볼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감기 때문에 한동안 뜨거운 차를 마신 탓인지 혀가 깔끄럽고 입맛도 없었다. 나는 갑자기 모든 의욕을 잃어버린 것만 같았다.

 

 

 

 

 

 

 

수진이를 보러 재활센터에 가는 날이었다. 오늘은 도서관 휴관일이어서 나는 TV를 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나는 괭이 갈매기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이미 어미새 만큼 자란 새끼새가 날개를 퍼덕거리고 있었다. 어미새가 독려하는 데도 새끼 새는 여전히 제자리에서 날개만 퍼덕거릴 뿐이었다. 그런데 순간, 아기새는 허공을 향해 뛰었다. 추락하는 줄 알았던 아기새는 양날개를 힘차게 휘저으며 날고 있었다. 이제는 아기새가 아니라 다 자란 괭이 갈매기였다. 나에게는 아기새가 날던 날지 못하던 그것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발 딛을 곳 하나 없는 허공에 발을 내딛는 용기, 그것이 중요했다. 새는 설사 추락해 죽는 한이 있어도 날기 위해 허공을 뛰지 않는가.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리지는 않는다.

버스를 타고 가는 데 내가 나온 고등학교를 지나게 되었다. 학교 안에는 과학실을 개조해서 만든 작은 도서실이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릴 때 그냥 학생들이 대출·반납카드를 작성했고 사서 교사는 따로 없었다. 그러다보니까 도서실은 아이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사실 도서실을 찾는 아이들은 대개 같은 반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들이었고 나도 그런 아이들 중 하나였다.

나는 여전히 그 때 그 상처받은 아이의 모습 그대로였다. 나는 내 마음의 상처를 아버지 혹은 내 마음을 상하게 했던 사람들의 책임으로 돌리고 이제껏 내 스스로를 가엾게 여기면서, 나를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사람이 선희라고 믿었고 그래서 선희한테 집착했고, 그래서 선희는 날 떠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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