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는 한없이 침잠된 공기가 흐르고 있었으나

Posted by 트럼프h
2016. 7. 1. 22:36 카테고리 없음

 

 

 

 

 

차 안에는 한없이 침잠된 공기가 흐르고 있었으나

 

 

 

 

 

 

 

 

 

그들이 알 리는 만무했다. 만유의 주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생각할 그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씩을 할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주변에서 겉보기에도 너저분하기 그지없는 남자 하나가 구걸을 하고 있었다. 금붙이를 번쩍이는 여자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자 여자가 대번 소리를 지른다. “뭐야 이 거지는!” 그리고는 다른 이들을 불러 남자를 저쪽으로 밀쳐버렸다. 남자는 엎어졌다 일어나며 여자를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다시 여자에게로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교회 앞은 난장판이 되었다. 추봉훈은 소리 내어 중얼거렸다. 만유의 주님 그대를 사랑하시니.

 

 

 

 

 

 

빗방울이 굵어지고 있었다. 채로부터 빌린 노후한 차는 그 빗소리를 여과 없이 들려주었다. 그것은 딸 추미경이 싫어하던 소리였다.

빗속에는 신이 있어 아빠.”

벽지를 기어오르는 곰팡이를 보며 미경은 말했다.

그 신이 자꾸 우리를 죽이려 들어.”

사실, 추봉훈은 거의 자포자기였다. 회복되지 않는 아내의 병 때문도 아니었고 불어나는 빚 때문도 아니었고

 

 

 

 

 

벽을 기어오르는 곰팡이 때문도 아니었다. 단지 쉬고 싶었던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오래되고 견고하여 질겨빠진 제 삶의 굴레에, 이제는 그만 항복의 기를 보이고 싶었다. 그 항복의 기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는 추봉훈 역시 짐작만 하고 있었으나 분명케는 몰랐다. 모른다고 믿어야만 했다.

하지만 죽이려 든다고 해서.”

추봉훈은 느리게 주먹을 쥐었다.

그냥 죽어줄 순 없잖아.”

딸 추미경이 자포자기 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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